Lacrimosa - Ich bin der brennende Komet (live)
고딕 밴드 중 국내에 비교적 많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라크리모사(Lacrimosa)의 앨범이 국내에 공개되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적지 않은 수의 앨범이 라이센스 되었다. 작금의 국내 대중음악 시스템에서 소외된 메탈 시장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앨범이 지속적으로 공개되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반갑고도 고무적인 일이다.
관객 없는 무대에 홀로 서있는 피에로나 흑백톤으로 그려진 섹시한 여성의 모습은 이제 라크리모사를 연상하게 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음악 역시 흑백톤처럼 메탈과 클라식이 순도높게 차용하여 크로테스크하고 우울한 사운드로 대표된다.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톤처럼 밴드는 메탈과 클라식이라는 두 가지 코드를 다양한 스타일과 표정으로 융합시켜 라크리모사의 사운드를 그려내고 있다.
97년작에 공개된 [Stille]은 장대하고 웅장한 심포닉 사운드와 구슬픈 멜로디까지 전작 [Inferno](95)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한층 더 신축적이고 강화된 사운드로 채워져 있다. 오케스트레이션과 장엄한 코러스를 활용한 심포닉한 구성과 강렬한 메탈릭 사운드가 질적 양적으로 완성도 높은 클라식컬 고딕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는 앨범이다. 보컬과 키보드를 맡고 있는 라크리모사의 핵심 인물인 틸로 울프(Tilo Wolff)는 전작 [Inferno](95)부터 보컬 겸 키보드디스트 안네 누르미(Anne Nurmi)가 영입하여 더욱더 강화되고 치밀해진 고딕 사운드를 설계하고 있는데 본작을 밴드 최고 앨범으로 평가하는 매니아들이 많을 정도로 클라식과 메탈이 감동적으로 융합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명반이다.
앨범은 스트링의 비장감 서린 인트로가 인상적인 'Der Erte Tag' 로 시작된다. 신비스런 여성 코러스에 비애감의 무게를 더하는 메탈릭 기타 리프와 진보적인 사운드 전개를 보이면서 70여분 간의 탐미적인 고딕 사운드로의 여행을 떠난다. 대부분의 곡들이 클라식의 구조에 메탈 요소가 첨가된 구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지만 'Siehst Du Mich Im Licht?', 'Deine Nahe' 에서는 여타 곡들과 다르게 비교적 강렬한 메탈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Siehst Du Mich Im Licht?' 는 그 중 가장 메탈릭한 넘버고 'Deine Nahe' 도 메탈풍으로 후반 빠른 피아노 전개와 몰아치는 강렬한 기타 애드립은 전통적인 헤비메탈의 색채를 띄우고 있다.
이 점이 다른 고딕 계열 밴드들과 다소 차이점일 수도 있는데 라크리모사의 기타 프레이즈는 고딕메탈의 그것과는 다른 정통 헤비메탈 기타 프레이즈 색채가 강하다. 그렇지만 라크리모사는 다분히 클라식의 방법론과 구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Mein Zweites Herz' 같은 곡은 메탈의 요소가 거의 배제된 웅장한 심포닉 사운드로 전개와 구성이 클라식 곡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라크리모사의 앨범은 거의가 독일어로 불리워지는데 솔직히 틸로의 보컬은 낮은 중저음의 크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뛰어난 보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뛰어난 음악성으로 그런 부분을 충분히 상쇄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에 대한 또 하나의 보완책으로 전작부터 안네 누르미를 가입시켜 음악적 표현 영역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안네의 참여로 'Not Every Pain Hurts', 'Make It End' 같은 영어 버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보컬 역시 중저음의 건조한 틸로와 듀앳 형식을 취하면서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앨범은 성스러운 여성 합창단의 인트로가 아름다운 14분의 대곡 'Der Zeit' 가 마지막 트랙에 자리한다. 일렉과 클라식의 요소와 악기의 결합이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이는 단연 돋보이는 앨범의 명곡이다. 곡의 제목은 '시간의 끝'이지만 끝은 곧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끝과 시작의 무한한 감정이 혼재한 듯한 바이얼린의 애절한 연주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다.
한편에서는 라크리모사를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로 규정할 정도로 본작에선 심포닉과 프로그레시브의 유니트가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드럼이나 기타 등의 메탈릭한 연주가 전작에 비해 강해진 듯한 인상이고 피아노의 아름다운 전개나 애수띤 멜로디의 바이얼린은 심포닉의 그것과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라크리모사의 5번째 앨범인 [Stille]은 연극적인 요소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심각한 철학적 무게를 리스너가 느끼길 바란다기 보단 사운드에 대한 탐미적인 여행에 동참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달리보면 라크리모사는 고딕 메탈이라는 범주에 머문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만의 사운드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클라식과 메탈의 절묘한 결합, 그리고 쓸쓸한 정서,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탐미적인 사운드, 그것이 라크리모사 사운드의 정체일 것이고 본작 [Stille]은 그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낸 명반이다.
98년에 발표된 [Live]는 데뷔작 [Angst]부터 [Stille]까지, 7년간의 음악 여정을 정리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이 록 퍼포먼스에서 어느 정도로 소화될 수 있는지를 내보이는 가장 직접적인 단서와도 같은 앨범이다. 두 장의 CD에 담겨 있는 열 여덞 수록곡들은 심포니를 중심으로 한 음악적인 골자를 뚜렷이 만들어갔던 두 앨범 [Inferno]와 [Stille]에서 가장 많은 열 곡(5곡씩)을 선별했으며 [Angst]와 [Einsamkeit]에서 각각 한 곡씩, [Satura]에서 두 곡을 가져왔다. 그 외에 "Ich Bin Der Brennende Kome"와 "Alles Luge"는 싱글에만 수록됐던 곡들이고 "Darkness"는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연주되는 곡이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각 트랙들을 원곡과 최대한 비슷하게 유지하면서도 세세한 편곡으로 앨범에 비해 한결 역동적이고 감각적으로 변형시키는 한편, 특유의 웅장한 분위기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또 밴드를 대표하는 심포닉 트랙들을 중점적으로 나열하는 가운데 "Make It End"나 "Copycat" 같은 그루브한 곡들과 "Not Every Pain Hurts","Kabinett Der Sinne" 처럼 부드러운 선율의 곡들을 사이사이에 배치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상이한 구성과 진행의 각 곡들은 앨범과 비교해서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이 유연하게 재현되고 있고 세션들은 97년부터 계속 호흡을 맞춰온 덕분인지 노련한 라이브 감각으로 탄력있는 공연을 이끌어간다. "Make It End", "Copycat" 같이 '원래 신나는' 곡들은 말할 것도 없고, "Stolzes Herz"를 듣고 나면 마치 펑크 공연장 한가운데서 한바탕 뛰고 난 기분인데다 "Ich Bin Der Brennende Komet"는 댄서블한 스래쉬 넘버들을 생각나게 할 정도다.
결국 [Live]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앨범과 비슷하게 연주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라크리모사의 음악이 방한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감상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공연장에서 팬들과 함께 교감하고 호흡할 수도 있는 음악이라는 점에 대한 명쾌한 증명을 해냈다는 거다. 그리고 한편으론 지난 7년간의 스스로를 회고하는 기념적 존재로서도 충분히 한자리를 지켜주며, 이들의 히스테릭한 분위기와 딱딱한 형식미 때문에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를 초심자들에게도 '친숙하고 생생하게 재현된 베스트'로서 나쁘지 않은 가이더(guider)가 되어줄 수도 있는, 그야말로 '활용도 높은' 음반이다.
굴곡 심한 곡 구성이나 잦은 변박, 리듬 체인지는 드림씨어터(Dream Theater)를 위시한 90년대 프로그레시브 메틀 밴드들을 떠올리게 하고, 전체적으로 음산하고 분열적인 정서는 데빌돌(Devil Doll)의 음악을 생각하게 한다. 전작 [Stille]를 듣고 난 감상은, 라크리모사의 음악이 고딕의 양식미를 이어받고 있지만 정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익스트림 씬의 '변방'에 위치한 음악임을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또한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프로그레시브라는 메틀씬의 새로운 '트랜드'를 적절하게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는 [Stille] 만으로도 이미 위협받지 않는 정체성을 확립한 그들이지만 [Elodia]는 새롭게 시작한다.
통산 6집 앨범인 [Elodia]의 재킷을 장식하고 있는 변함 없는 흑백톤의 그림은, 언제나 그랬듯 적지 않은 것을 말해준다. 삐에로는 바이올린 대신 여신 '엘로디아'를 팔에 안았을 뿐, 공허하고 황량한 정서는 여전히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그에게 찾아든 비극을 보듬어 안기라도 하듯 왠지 측은한 뒷모습을 한 삐에로의 팔에 안긴, 더욱 애처로운 엘로디아의 '감긴 눈'을 보면 느끼게 되는 묘한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답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이 앨범은 전작에 비해 한결(혹은 여전히) 비극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클래식적인 형식미가 더욱 강조된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로서 '비극적 정서'의 뒤를 받치고 있다. '클래시컬함'이야 언제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었지만, 이 앨범에서 그 의존도는 더욱 심화된다. 하지만 정작 메틀과 클래식이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데는 오프닝 트랙 'Am Ende Der Stille'에서와 같이 곡 전체가 '전자음' 없는 오케스트레이션 만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이나 악기편성 같은 '중심적인' 요인들보다는 군데군데 드러나는 미세한 연주나 완급 등 '주변적인' 요인들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Halt Mich'의 미려한 스트링 멜로디나 'The Turning Point' 도입부의 플룻 연주, 'Ich Verlasse Heut`Dein Herz'의 점층적인 진행 같은 것들이 현악과 메틀 리프를 혼용하는데 있어서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는 작용을 한다. 한편 이런식으로 사용되는 디테일한 요소들이 고급스러우면서 투박하고, 처연하면서 코믹한 다층적인 감정들과 이미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안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밴드 내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도 이 앨범은 [Inferno]를 기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밴드만의 개성이 한가지 모습으로 정형화되기보단 여전히 유동적이며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Elodia]는, [Stille]와 함께 밴드의 음악적 정점이 묻어난 '수작'임과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결정(結晶)의 '습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틸로의 외모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기는 라크리모사의 괴기스러운 심포니는 자연히 네오 프로그레시브 밴드 데빌 달(Devil Doll)의 음악을 소급하게끔 만든다. 미스터 닥터(Mr. Doctor)라는 예명으로, 몇 십분의 긴곡 한 두트랙 만을 우겨 넣은 앨범들을 발표했던 데빌 달은 오페라에 젖줄을 댄 고급스럽고 섬세한 메틀 음악(엄밀히 말하면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메틀 형식미의 차용)으로 지독한 광기의 미학을 실천했던 밴드로서, 그로데스크하면서 뒤틀어진 정서는 라크리모사의 음악에 고스란히 전해져있다. 라크리모사의 음악은 여기에 틸로 특유의 목소리와 아코디언이나 트럼본으로 포장된 3류적 촌스러움, 그리고 비극적인 멜로디가 더해진다. 이 '3류적 정서'와 '비극적인 멜로디'는 묘한 상호작용을 하며전체속에서 혼합되고, 레퀴엠의 압도적인 구성을 등에 업으면서 웅장하고 비극적이면서 처연한, 그러면서도 코믹한 밴드만의 차별적인 페르소나(Persona)를 이끌어낸다.
라크리모사의 신작이자 일곱 번째 정규 앨범인 [Fassade]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오버랩 되는 잔상이 하나 있으니 바로 그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4집앨범 [Inferno]이다. 여전한 흑백톤은 물론 여성이 지배하는 남성들의 모습, 다시 말해 여성을 상위에 둔 권력의 상하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점도 그대로다.
[Fassade]에 대한 감상은 '레퀴엠에 대한 여전한 애정 속에 복잡한 기교의 거세'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그레시브 메틀적 요소를 대거 도입해 복잡하고 난해한 진행패턴을 보여주었던 [Stille]과 클래식에 한결 더 가까이 다가섰던 [Elodia]를 지나 본작에 이르러서는-앨범커버가 시사하는 바대로-[Inferno]의 원초적인 무게감을 다시금 들추어내고 있는 한편, 작,편곡상의 능력이나 부드럽고 고즈넉한 현악기의 활용 면에서는 한결 노련해지고 성숙해진 중견 뮤지션의 슬기로움이 확연히 배어난다.
3부작으로 구성된 본작의 첫 번째 문을 여는 'Fassade-1.Satz'는 라크리모사식 레퀴엠의 전형이자 [Inferno] 시절로의 회귀를 뚜렷이 감지하게 해주는 곡이다. 장중한 오케스트라 사이로 얹혀지는 틸로의 목소리 사이에 생겨나는 불협화음은 鬼기 어린 환청 같은 섬뜩함을 가져다준다. 'Der Morgen Danach'는 가벼운 기타 스트링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경쾌한 리듬의 첫 번째 싱글 컷트 된 트랙이고 'Senses'는 규칙적이고 단아한 리듬라인의 진행이 앤(Anne Numi)의 목소리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그려내는 신비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Warum So Tiel'는 프로그레시브 적인 분위기 속에서 잔잔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헤비 리프, 영롱한 건반을 넘나드는 가운데 트럼본 섹션이 가미되는 형식을 가진 곡으로 다채로운 악기의 편성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는 빼어난 완성도가 돋보인다.
소프라노 중창 보컬이 성스럽고 묘연한 느낌을 자아내는 'Fassade-2.Satz'는 앨범의 두 번째 파트이자 앨범의 전체적인 균형을 조율하고 있는 곡이고 그 바로 받치고 있는 'Liebesspiel'는 인트로부분이 메탈리카(Metallica)의 'Enter Sandman'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헤비 넘버. 'Stumme Worte'는 'Warum So Tiel'와 함께 밴드의 새로운 지향점을 짐작케 하는 곡으로 구태의연한 치장을 걷어낸 단촐한 현악선율 사이로 고뇌하듯 중얼거리는 틸로의 목소리가 공허한 상실감을 전한다. 오프닝 트랙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Fassade-3.Satz'를 끝으로 라크리모사의 일곱 번째 지옥같은 심포니는 막을 내린다.
라크리모사는 현대사회의 개인들 사이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불안한 본성을 지독스럽게 긁어댄다. 그것은 마치 습관과도 같이 우리 주위를 떠도는 것이며 의식할 순 없지만 존재하는, 이른바 무의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무의식적인 불안함'은 여섯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밴드의 일관된 정서를 대변해왔고, [Fassade]에 이르러서도 변함 없이 유효하고 매력적인 순도를 잃지 않는다.
cnfcj: http://ehjy.com.ne.kr/artists/Lacrimosa/lacrimosa_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