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지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지나온 삶을 평범하더라도 최대한 극적으로 포장해 놓는다.

당장 겪을 땐 아무렇지 않은 듯 하다가도 막상 겪고 나면 새삼 대단해 보이는 큰 이야깃거리가 된다.

한국남자라면 누구라도 겪는 군대 이야기는 사회에 나와서 늠름한 무용담이 되고,

깔끔하지 못하게 끝난 사랑이라도 추억 속에서는 꽃향기 물씬 풍기는 감성멜로물이 된다.

우리가 지난 일들을 이렇게 보기 좋으라고 꾸밀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서 확인도 못하는데 비장한 무용담인지 찌질한 생존기인지 무슨 방법으로 알겠나.

삶이 진행되면서 더 팍팍한 순간들을 많이 만나면서 꿈과 낭만의 꽃밭을 거닐던

지난 시절로 되돌아가고도 싶다지만, 진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덥석 받아들일 사람이 실은 몇이나 될까.

머리와 가슴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형태로 구현된 추억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만,

현실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한 추억의 실제 지금 모습을 만나야 할 테니까 말이다.

시간이라는 살을 붙이지 않고 뼈대만 남은 추억과 다시 마주한다는 게 맘처럼 쉽지는 않을 거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그처럼 '추억'이라는 판타지의 허물을 벗기고 '과거'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건축설계사 일을 하고 있는 승민(엄태웅/이제훈)에게 생각지 못한 손님이 찾아온다.

15년 전 함께 학교를 다녔던 서연(한가인/수지)이 불쑥 제주도에 있는 자신의 옛집을 다시 지어달라며 찾아온 것이다.

승민이 서연을 단번에 반갑게 맞이하지 못하는 건, 15년 전 그가 서연을 열렬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

전공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정릉동에 산다는 공통점에 힘입어 함께 과제를 하게 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서연의 꾸밈없고 밝은 성격, 그리고 출중한 미모로 인해 승민은 서연을 몹시 좋아하게 되지만

영 숙맥이라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재수생 친구 납뜩이(조정석)의 너무 대담한 조언만 구할 뿐이다.

하지만 운명은 승민과 서연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 서로의 나이든 모습을 보며 둘은 다시 만났다.

지금이라도 사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건축학개론>은 영화의 생명이 소재의 신선도와는 별개임을 보여준다. 물론 좋은 의미다.

이 영화의 소재나 설정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대학 새내기 시절 첫사랑을 만나 감정을 키워가지만

그 사랑은 결국 이뤄지지 않고, 서로의 미래를 걷고 난 뒤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

15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이니 지난 시절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음이 분명하고,

그 뒤의 반전이랄 것도 없다. 그러나 영화라는 게 늘 의외의 것으로만 사람 마음을 흔드는 건 아니다.

때론 너무나 뻔하고 평범한 것으로 우리도 진짜 겪었을 법한 기억과 감정의 어딘가를 건드릴 때도,

영화의 힘은 발휘된다. <건축학개론>이 바로 그런 경우다.

첫사랑의 환상이 담긴 클리셰만 재현한 것이 아니라,

'가장 보통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꼼꼼한 디테일과 참신하면서도 싱크로율이 딱 들어맞는 비유로 구현한 것이다.

영화의 디테일은 15년 전, 1996년의 그 시절을 손에 잡힐 듯 포착해낸다.

초등학교 시절이긴 하지만 나 역시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니 그 충실한 재현이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다.

고작 15년 전이니 별로 변한 게 없겠다 싶겠지만 요 몇년 간 세계는 너무나 급속히 변한 탓에

15년 전도 돌아가 보면 옛날 같다는 것이 영화를 보면 느껴진다. 건전지용 배터리 통을 따로 붙여서

듣던 CD플레이어, 전람회의 노래가 담긴 CD, 그 시절 서울의 시내버스 모습, 게스가 유행이던 시절

짝퉁으로 나온 '게우스' 티셔츠, 대학생들이 입고 다니던 그 때는 최신 유행이었겠지만

지금은 촌스러운 옷들까지. 현재의 배우들로 재현한 사실적인 96년의 모습은,

이 영화가 막연한 상상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포괄적인 보편성과 섬세한 일상성을 모두 지닌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생활 연기 또한 돋보인다.

두 역할을 네 배우가 연기하지만, 배우들은 자신들의 캐릭터에 배역을 맞추기보다 배역에 자신들을 맞춤으로써

보기 좋은 연결성을 이룬다. 툭툭 던지는 식의 말투가 수지에서 한가인으로 이어지고,

순진한 듯 하다가도 감정에 쉽게 휩싸이는 모습이 이제훈에서 엄태웅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부드럽고 친근해진 엄태웅은 이 영화에서 아직은 미성숙한 듯한

승민의 복잡한 심경을 맞춤옷을 입은 듯 적절하게 보여준다.

겉으로는 추억을 보내려고 애쓰는 듯 하지만 자꾸 곁눈질로 그 추억을 보면서 미련을 갖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 남자의 방황이 그대로 보인다. 한가인은 확실히 현대극에서 그 매력이 빛을 발한다.

그녀가 연기한 현재의 서연은 예전의 미모를 유지(혹은 더 발전?!)하고 있지만 거기에 그동안의 시련들이

켜켜이 쌓인 듯한 느낌이다.

첫사랑의 판타지에 현실의 먼지가 더해진, 여전히 아름답지만 피로해 보이는 그 모습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자신을 한탄하며 술김에 욕지거리를 내뱉는 장면에서는 그러한 현실에의 접근이 가장 극에 달한

듯해 인상적이었다.

15년 전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역량 또한 상당하다.

15년 전의 승민을 연기한 이제훈은 그 중에서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가장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대개는 소심해 감정 표현을 못하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감정 조절을 못해 사고를 치기도 하는,

누구라도 느꼈을 법한 속앓이로 애태우는 '가장 보통의 젊음'을 보여주며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의 가장 충실한 안내자가 된다.

그의 디테일한 감정 표현은 남성 관객들의 공감과 여성 관객들의 호감을 자아낼 것이다.

연기 경험이 <드림하이> 외에는 없는 15년 전 서연 역의 수지는 역할과 본인 캐릭터의 싱크로율에

힘입어 안성맞춤인 연기를 선보인다. 물론 이것은 온전히 본인 역량 덕분이 아니라,

캐스팅의 힘도 상당 부분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대사 처리 등에 있어서 예쁜 척하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하려 한 부분 등, 예쁜 캐릭터가 아닌 자신과 잘 맞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들 외에도 현재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오는 납뜩이 역의

조정석이 펼치는 심상치 않은 내공의 감초연기 또한 주목해 볼 것.

그는 시종일관 납득이 안간다고 하면서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을 만한 빅재미를 수시로 터뜨린다.

카피에서도 '우리 모두'라는 말을 강조할 만큼 보편성에 힘을 싣는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분명한 캐릭터를 갖출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 요인은 새로우면서도 수긍이 가는 비유다.

두 사람의 첫 만남 배경부터 건축학개론 강의로 설정한 영화는 실제 건축학과를 전공한

감독의 경험을 되살려 사랑의 양상을 건축학 수업과 그럴 듯하게 연결시킨다.

첫 강의에서 '내가 사는 곳을 잘 알기'를 과제로 내면, 승민과 서연이 사는 곳인 정릉동 주변을 돌며 교류하고,

두번째 강의에서 '집을 벗어나 멀리 다녀보기'를 과제로 내면, 승민과 서연이 정반대편인

강남까지 가보면서 교감의 범위를 확장하는 식이다.

이는 서연의 부탁으로 승민이 집을 지어주는 현재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집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두 사람의 추억 속 사랑과 현재 기억 또한 다음 단계로 진행, 복원되어 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밑도끝도 없이 심오하게 느껴지다가도,

'사랑은 무엇과 같다'라고 정의를 내리면 급공감하듯, 이런 적절하고 구체적인 비유는 영화가 묻는

첫사랑과 추억에 대한 질문의 해답 또한 찾기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그 질문이란 '우리는 왜 첫사랑을 신성하게 추억하는가'이다.

'첫사랑'이라는 세 글자의 단어에는 실은 여러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처음, 사랑, 미숙함, 실패 등이 그것이다. 처음 사랑이라는 벅찬 감정에 눈을 뜨던 그 순간은

사랑의 파장이 가장 강렬하게 뇌리를 스치던 순간이기에 결코 잊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사랑들과 두고두고 비교가 될 잊지 못할 척도가 된다.

그러나 처음 하는 일은 뭐든지 미숙하게 마련이어서, 지금 생각하면 이불에 하이킥을 수백번은 할

바보 같은 실수들을 하게 된다. 대체 왜 그랬을까 싶은 후회를 부르는 일들을 말이다.

결국 그 실수들이 쌓이다 보면 가장 번쩍였던 그 처음의 사랑은 실패라는 길로 접어들고 만다.

어쩌면 그래서 첫사랑은 실패한다는 속설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후회는 사람이 하는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지만, 이 첫사랑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후회할 것 투성이인 셈이다.

그래서 더 자주 추억하고, 더 예뻐지고 더 애틋해지는 거다.

지금 같으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데 하면서 후회하고 있으면, 다시 그 기회를 준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낭만적인 듯 하던 영화는 나지막히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지금 같으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 지금은 달라졌다는 뜻인데, 나는 달라졌음을 인정하면서

그 혹은 그녀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세월의 간극은 오만가지 변수를 담고 있는 것이어서, 그때의 그 사람들, 그 감정이 지금에 와서는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변했는지를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줄타기를 하는 듯 하지만, 그 발랄했던 서연이 어른이 되어 자기 앞에서 술에 취해 울 때

승민은 이미 직감했을 것이다.

그 때 끝난 일은 이미 그 때로 끝난 거라는 걸.

바로잡는 것 또한 그 때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임을 말이다.

그러니까 추억에는 재건축이 있을 수 없고, 기억에는 습작이 없다는 얘기다.

추억이라는 건 단지 그 당시의 기억 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기억 이후로 이어져 온 세월이 거기에 온갖 의미들을 붙여 가면서 또 다른 형태로 곁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허물고 아예 새로 짓는다는 건, 그동안 그 추억에 부여했던 의미들까지 완전히

허물어버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미 그 추억에는 허물 수 없는 뼈대가 버티고 있으며, 대체 결과물이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풀밭 투성이가 되어 있던 옛집을 다시 지으려는 서연과 승민의 노력은,

그처럼 추억에 꽃장식과 온갖 데코레이션을 함으로써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기려는

누구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엔딩 크레딧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서를 전달하는 전람회의 노래

습작' 또한 노래의 제목과는 아이러니한 깨달음을 던진다.

기억이라는 게 습작처럼 한번 씩 그려봤다가 다시 돌아와서 지우고 새롭게 그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철없고 미숙했던 그때의 기억을 지금 다시 꺼내며 위안 삼을 뿐,

우리는 그것을 고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다시 지어지는 집과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를 통해 영화는 역설적으로

다시 지어질 수 없는 추억과 습작이란 있을 수 없는 기억의 의미를 되짚는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이렇게 추억을 복기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 지향적인 영화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건 그만큼 소중히 해야 할 현재를 동반하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아감과 동시에 추억도 같이 나아가고 있으니,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우리는 더 나은 곳으로 걷는 수 밖에 없다.

부실공사만 하지 않는다면 집도 얼마든지 오래 버틸 수 있고 더 예쁘게 꾸밀 수도 있듯,

우리의 삶 역시 처음 감정의 떨림을 느끼던 그 순간을 허투루만 보내지 않는다면

더 살을 붙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 법을 배울 게 아니라,

오래 되어도 그만큼 편안할 수 밖에 없는 옛집을 껴안고

그 집을 더욱 아름답고 멋지게 꾸미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건축학개론>이 마지막으로 내놓는 수업 내용이 아닐까

출처: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detail/read?articleId=207816&nil_id=more&viewKey=detail&bbsId=review1&searchKey=meta&searchValue=1%3A67165&pageIndex=1&nil_no=242603&t__nil_movie=txt&nil_id=4

Posted by 부비디바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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